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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트렌드

차세대 이동통신…삼성이냐 LG냐

‘서울에서 대구로 KTX를 타고 내려가는 회사원 A씨.

기차시간 1시간 50분 동안 할 일을 찾던 A씨는 영화를 보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갖고 있던 휴대전화를 통해 2시간짜리 최신 영화를 다운로드받았다. 이때 걸린 시간은 1분여 남짓. 그것도 시속 300km가 넘는 초고속 열차에서다.’

A씨의 얘기는 아직 상용화되진 않았지만, 현실에서 이미 선을 보였다.

삼성전자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선보인 ‘와이브로 에볼루션’ 기술이 그것. 와이브로 에볼루션 기술은 기존 와이브로에 비해 데이터 전송속도가 4배 이상 빠르다.

다운로드 속도는 149Mbps, 업로드는 43Mbps에 이른다. 400Mb의 MP3 음악파일을 0.2초 만에 내려 받을 수 있다. 또 기존 와이브로는 120km 속도에서 데이터 통신이 가능하지만, 에볼루션은 350km까지 확장됐다.

와이브로는 지난해 3세대 이동통신(3G) 기술 표준 중 하나로 인정받은 바 있다. 그 연장선상에 있는 와이브로 에볼루션이 주목받는 이유는 현재의 3세대 이동통신을 이을 차세대 기술, 즉 4세대 이동통신(4G)과 연관성이 깊기 때문이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휴대전화들은 2세대 혹은 3세대 이동통신서비스를 이용한다. 화상전화와 무선고속인터넷 등을 갖춘 SK텔레콤과 KTF의 서비스가 3세대다.

4세대 이동통신은 3세대 이동통신의 대를 잇는 서비스로 내년 2월 후보 기술 제안이 본격화돼 2011년 정도 상용화가 시작될 전망이다. 현재 4G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정지 시 1Gbps, 이동시 100Mbps 속도가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 기준으로 평가된다.

와이브로 에볼루션은 이 기준을 웃돈다. 따라서 국외 기술에 의존했던 2세대나 3세대 이동통신서비스와는 달리 4세대에선 우리 기술도 세계 표준 중 하나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와이브로 에볼루션의 기반인 와이브로는 이미 세계 각국에서 상용화되면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미국 3위 이동통신 업체 스프린트넥스텔은 10월부터 미국 볼티모어 지역에서 ‘모바일와이맥스(와이브로의 국외 명칭)’ 상용서비스를 시작했다. 볼티모어 지역에 구축된 기지국 200곳에는 모두 삼성전자의 장비가 들어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시카고와 워싱턴DC·필라델피아·보스턴·댈러스 등 스프린트넥스텔이 서비스를 준비 중인 지역에서 총 1000곳에 기지국을 설치했고, 2010년까지 7700여곳에 기지국을 추가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와이브로, 미국·중동서 서비스 본격화

미국뿐 아니라 중동, 러시아 지역에도 진출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2위 이동통신 업체인 모빌리는 지난달 중동 지역에서 처음 모바일와이맥스서비스 ‘브로드밴드앳홈’을 시작했다. 삼성전자의 장비를 활용해 리야드 등 4개 지역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앞으로 서비스 지역을 확대해나간다는 계획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선 KT가 인수한 현지 통신 업체 슈퍼아이맥스가 국내 IT서비스 업체 포스데이타의 장비를 활용, 이달 중순부터 상용서비스를 시작했다.

잇단 국외 진출 성공으로 와이브로 장비를 제공하는 삼성전자는 앞으로 관련 시장을 주도한다는 복안이다.

와이브로 에볼루션이 와이브로 기술을 기반으로 한 만큼 서비스가 활성화되면 자연스럽게 4세대 서비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은 “와이브로에서 기술 리더십을 확보해 와이브로시장은 물론 차세대 4G 기술도 주도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의 발 빠른 행보에 경쟁 진영도 분주해지고 있다. 현재 대표적인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로는 ‘롱텀에볼루션(LTE)어드밴스’가 있다.

LTE어드밴스는 노키아, 에릭슨 등 유럽 업체들이 주도하는 기술 진영. WCDMA 기술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밖에도 퀄컴사의 ‘울트라 모바일 브로드밴드’라는 기술이 있지만 상용화에 있어 앞서 두 표준에 비해 뒤처져 있다.

국내에선 삼성전자의 맞수인 LG전자 측이 LTE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LTE 측은 휴대전화시장 1위 기업인 노키아와 함께 보다폰, 미국 AT&T와이어리스, 버라이존, 일본의 NTT도코모 등 대형 통신 업체들이 참여했다.

LG전자, LTE 기술에 ‘올인’

국내에선 삼성전자의 맞수인 LG전자가 LTE 쪽에 전념하고 있다.

LG전자는 10월 초 LTE 기술 진영의 워킹그룹 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한 바 있다. 이 회의에는 LG전자와 노키아, 에릭슨, 보다폰, 노텔사 등 이동통신 관련 20여개 업체가 참여했다.

최진성 LG전자 이동통신연구소장은 “LTE 진영 서울 회의를 통해 상용화에 한걸음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다”면서 “LG전자가 4G 휴대전화 기술 주도권을 지속적으로 확보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계열의 LG텔레콤 또한 4세대 서비스에 적극적인 만큼, LG전자와 보조를 맞출 공산이 크다.

정일재 LG텔레콤 사장은 최근 LG텔레콤 신사옥 준공과 더불어 차세대 이동통신인 4G 사업을 준비하고 적극적인 투자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향후 있을 700~800Mhz 대역의 주파수 재분배를 통해 4G 서비스 준비에 만전을 기한다는 계획. LG텔레콤은 SK텔레콤이나 KTF와 달리 WCDMA 방식의 3세대 서비스는 제공하지 않고 있다.

LG 측이 LTE 쪽에 ‘올인’하는 분위기인 데 반해 삼성전자는 양수겸장 전술을 펴고 있다.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와이브로 에볼루션 상용화에 주력하면서도 동시에 LTE 기술 개발에도 관여하고 있다. 와이브로를 중심으로 하되 시장 상황에 따라 LTE 쪽 시장에도 언제든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전망은... 

2011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만큼 4세대 이동통신 표준을 예상하기는 쉽지 않은 게 사실. 시장에선 과거 유럽식 GSM과 미국식 CDMA처럼 4세대에서도 2~3개 표준이 경쟁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유럽과 미국의 이동통신사 및 휴대전화 기기 업체들이 참여하고 있는 LTE가 주류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정승교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아직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현재로선 구체적 방향을 알기는 힘들다”면서 “글로벌 표준의 경우 LTE와 와이브로 에볼루션 등이 유력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LTE 진영의 우세설에 대해 삼성전자 쪽은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일단 와이브로 에볼루션 측은 기술적으로는 전혀 손색이 없다는 반응이다.

최근 와이브로 에볼루션 시스템 시연회에서 전재호 삼성전자 상무는 “미국, 러시아, 일본 업체들이 와이브로 에볼루션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으며 성능에 만족하고 있다”면서 “와이브로 에볼루션 원천기술 확보로 기술 선점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 상무는 “기존 와이브로에 비해서 LTE가 다소 우수했지만 와이브로 에볼루션 기술 개발로 4세대 이동통신에서 핵심기술을 보유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특히 GSM과 CDMA가 공존했듯이 LTE와 와이브로 에볼루션이 같이 사용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와이브로 에볼루션이 보조적으로 사용돼도 삼성전자 등 원천기술을 보유한 우리 업체들의 이익은 상당한 수준에 이를 전망이다.

두 기술 접목될 수도

LG전자 관계자는 “LTE가 4세대 이동통신의 주류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기술적인 측면에서 데이터 전송 속도와 용량 등에서 와이브로 에볼루션도 장점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기술적으로 결합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정승교 연구위원은 “LTE나 와이브로 에볼루션을 결합한 서비스를 내놓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니다”면서 “와이브로 에볼루션이 데이터 전송 용량과 속도에서 앞서는 만큼 LTE와 와이브로 에볼루션이 다양한 형태로 접목될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김병수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478호(08.10.29일자)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