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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트렌드

인터넷 활성화로 지구차원 ‘집단지성’ 형성

“인터넷 활성화로 지구차원 ‘집단지성’ 형성”
제롬 글렌 유엔미래포럼 회장
이미숙기자 musel@munhwa.com
제롬 글렌(61) 유엔 미래포럼(Director of Millennium Project of the World Federation of UN Association) 회장은 과학적인 예측기법을 통해 글로벌 세계의 변화를 추적해온 미국의 중견 미래학자다. 70년대부터 미래학적 관점에서 인간 및 사회 변화 추이를 연구하며 유엔과 세계은행, 유네스코, 미국 국제개발처 등의 컨설턴트로 일해왔고, 1996년 유엔미래포럼을 결성, 전 세계 각국을 연결하는 글로벌 싱크탱크로 키워왔다. ‘21세기 미래의 문화사업 메가트렌드’에 대한 국제미래학회 주최 세미나 등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달 25~29일 방한한 글렌 회장을 2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나 미래학적 관점에서 본 한국의 요즘 세태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 1 인터넷 집단지성이 이끄는 촛불시위

―요즘 한국에는 한·미 쇠고기협상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촛불시위가 발생하고 있는데 미래학적인 관점에서 분석을 하신다면.

“한국인들은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보다 엄격한 수입기준을 지키지 못한 정부에 대해 비판하고,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미래학적 관점에서 볼 때 아마 이런 쇠고기 수입논란은 적어도 10년 내 없어질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쇠고기를 더 이상 수입하지 않고, 소의 줄기세포를 이용해 좋은 육질만 배양한 뒤 이를 대량생산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미 이 기술은 실험단계를 완료했습니다. 비용이나 대량생산문제를 해결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2025년이 되면 줄기세포를 이용한 쇠고기 대량 배양이 가능해질 것이므로 축산농가에서 소를 키울 필요가 없어집니다. 따라서 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거리시위가 없어질 날도 멀지 않습니다.”

―그런 주장은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얘기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쇠고기의 살코기 배양문제는 2005년 퓨처리스트지에 보도됐습니다. 2025년이 되면 공장에서 최고급 육질을 가진 고기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이미 콩으로 만든 고기가 팔리고 있듯이 2010년부터 각국에서는 인공고기가 팔릴 것이고, 2015년쯤이면 인공 쇠고기가 나올 것입니다.”

―쇠고기문제로 인해 촉발된 이번 촛불시위는 인터넷을 통해 시위정보가 교환되고 뚜렷한 지도부 없이 진행되는 등 과거시위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이 촛불시위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한국은 인터넷 접속도가 아주 높은 나라입니다. 세계 어느나라보다도 초고속 인터넷망이 잘 보급되어 있어 인터넷에 관한 한 한국은 과도하게 발전된 나라로도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인터넷을 통한 정보공유화와 접속 평등화가 시민문화와 정치문화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즉 정치권의 권위주의나 정부의 일방적 조치가 먹혀들지 않는 사회가 된 거죠. 이번 쇠고기 촛불시위의 본질은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공유한 학생 및 시민들이 정부의 권위주의적 행정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며 거리로 나선 것이라고 봅니다. 이들은 기존의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며 민주적으로 소통하는 새로운 집단입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인터넷은 시민들의 의사표현방식과 형식을 바꿔놓고 있습니다. 인터넷 사용시간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사이버 공간에서의 대화를 즐기게 되고, 여기서 얻게 된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구축하고 이를 외부에 표출하게 됩니다. 인터넷이 활성화한 곳에서는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 형성됩니다. 전 세계 네티즌이 참여해 만들어가는 무료사전 위키피디아는 인터넷 집단지성의 대표적 상징으로 볼 수 있죠. 이번 한국에서 발생한 쇠고기수입반대 촛불시위는 인터넷으로 연결된 시민들이 쇠고기문제에 대한 집단지성을 형성하면서 거리로 나와 의사표출을 한 전형적 사건으로 봐야합니다.


# 2 여론역풍 막으려면 미래학적 관점에서 여론 설득하고 정책홍보하라

―그렇다면 이 같은 인터넷시대의 거리 촛불시위를 방지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정부가 미래학적인 관점에서 향후 3개월, 6개월, 1년 후에 제기될 정책 어젠다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이를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대중에게 홍보하고 설득해나가는 작업을 해야합니다. 요즘 시민들은 정보에 밝고 정부의 개별정책이 삶의 구체적인 분야에 미칠 파장에 대해서도 아주 민감합니다. 인터넷을 통해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각국의 각 단체들과 정보를 주고받으며 이를 통해 집단지성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일방적으로 조급하게 정책을 밀어붙인다거나 부실하게 정책을 만들 때 한국의 쇠고기파동 같은 역풍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미래학적 관점에서 정부나 책임있는 기관은 선제적 홍보를 통해 국민들의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이 같은 작업을 생략할 때 정부 정책은 거대한 역풍을 맞게 되고 정책은 총체적으로 불신을 당하게 됩니다.”

―그간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셨는데, 미래학자가 보는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요.

“한국은 단기간에 경제발전을 이룩해 선진국으로 진입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한국 경제발전을 이끈 지도자들이 미래에 대비하는 계획을 수립, 조직적으로 이행해온 덕분에 오늘의 성공이 가능했던 것이죠. 한국이 앞으로 더 전진하려면 정부가 미래에 대비해 국가 장기 비전을 세우고 실천해나가야합니다. 세계의 리딩 국가들은 모두 이런 기구가 있습니다.”

―이명박정부가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를 미래기획위원회로 개칭한 것은 그 같은 노력의 일환이라고 생각되는데.

“저는 아직 미래기획위원회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지만 관건은 그 같은 기구가 장기플랜을 세울 뿐만 아니라, 유엔 등 국제기구, 그리고 세계 각국의 미래 관련 기구들과 네트워크를 갖고 교류하며 글로벌 수준에 걸맞은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느냐에 있습니다. 만약 미래기획위원회가 한국내부차원의 몇몇 정책에 집중한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국가미래를 준비하는 기구가 될 수 없다고 봅니다.”

# 3 미래 예측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나라가 미래 세계를 이끈다

―한국인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한국인은 아주 근면하고 열정적인 국민이죠. 그런 에너지가 오늘날의 한국을 만든 힘이라고 봅니다. 한국의 뜨거운 교육열은 그런 한국인의 심성이 반영된 대표적인 현상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아주 경쟁적이고 스트레스가 많은 사회죠. 미래학적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은 그런 긴장과 스트레스를 줄여야합니다. 과도한 스트레스는 세포를 일찍 노화시키고 에너지를 갉아먹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좀더 느긋하게 생각하고 관조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 단계 도약을 할 수 있습니다.”

―글로벌 수준에서 국가의 미래에 대해 가장 준비를 잘하는 나라를 꼽으신다면.

“일반적으로 선진국들은 대부분 경제 및 사회, 과학기술, 인구추이 등 미래 각 분야에 대한 정확한 예측을 통해서 국가의 미래를 준비해나갑니다. 일국적인 관점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데에서 한발 더나아가 글로벌 차원에서 각국과 제휴 협력하면서 자국만의 독창적인 미래전략을 만들어갑니다. 미래예측 및 준비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핀란드와 스웨덴,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입니다. 이들 나라와 비교할 때 한국에서 얘기되는 미래 준비는 아직 국내적 개념이 아닌가 합니다.”

―한국에서는 ‘메가트렌드’의 저자 존 나이스비트나 ‘부의 미래’ 등을 펴낸 앨빈 토플러 등이 유명한데 같은 미래학자로서 이분들과의 차별성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나이스비트나 토플러는 기본적으로 저술가형 미래학자입니다. 반면 저는 보수나 진보 어느 한 편향의 싱크탱크로는 인간사회 미래에 대한 예측과 대비가 어렵다고 보고, 90년대부터 유엔 기구 등을 통한 전 세계적인 미래 예측 네트워크 형성에 초점을 맞춰온 조직가형 미래학자로 볼 수 있겠죠.”

글렌 회장은 누구?

일년의 절반 이상을 전 세계 각국에서 미래예측 관련 강연과 세미나를 하며 보내는 미국의 미래학자. 미 아메리칸대에서 철학, 안티오치 대학원에서 미래학 석사, 매사추세츠대에서 미래연구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글렌은 유엔대 미국위원회 이사로 활동하며 미국의 로켓과학자 테드 고든과 함께 1996년 유엔 미래포럼을 설립, 미래에 대한 과학적 예측을 위한 전 세계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유엔미래포럼은 세계유엔협회와 제휴한 미래연구 싱크탱크로 본부는 워싱턴에 있고, 한국을 포함한 32개국에 지부를 갖고 있다. 세계 5만여개 미래연구기관과 협회를 연결하는 ‘세계미래연구기구협의회’의 초대 회장도 맡고 있다. 유엔미래포럼에서 ‘유엔미래보고서’(State of the Future)를 매년 펴내고 있으며 ‘미래예측방법론’, ‘퓨처 마인드’ 등의 저서가 있다.

인터뷰 = 이미숙 정치부차장 musel@munhwa.com
문화일보 기사 게재 일자 2008-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