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룡 영화를 접하기 시작한 6~7살때부터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게 있어 최고의 액션스타는 성룡이다.
그때부터 생각했던게 저 사람 없으면 누구 영화를 그렇게 신나게 볼수 있을까 했었는데
고맙게도 거의 20년 동안 끊임없이 좋은 영화를 만들어줬다.
이젠 많이 늙어버린 성룡을 보면 가슴이 아프기까지 하다.
그래도 나한테는 영원한 최고의 액션스타.
영원한 ‘우리형’ 成龍 성룡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 |
[필름 2.0 2005-01-25 21:00] | |
지워지지 않는 용의 흔적 "홍콩에서 단역 출연 정도로 어렵게 살던 시절, 아버지가 나를 두고 호주로 떠나가면서 당부했던 세 가지가 있다. 마약하지 마라, 도박하지 마라, 그리고 갱단의 유혹에 빠지지 마라. 이후 그것은 나에게 생활의 원칙이 됐다. 나는 누드, 욕설, 총격이 난무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찍지 않는다. 충분히 다른 방식이 있다. 언제까지나 엔터테이닝하면서도 교육적인 영화를 하고 싶다. 우리 아버지는 90세가 넘었지만 그렇게 안 보일 정도로 여전히 정정하시다. 그리고 몇 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머리를 계속 자르지 않아 지금 머리가 너무 길다.(웃음) 그런 아버지를 좋아한다." 지난 2003년 <가을날의 동화>(1987)와 <송가황조>(1997)의 장완정 감독은 <용의 흔적: 성룡과 그의 잊혀진 가족>(이하 '<용의 흔적>')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1954년생, 본명 진항생, 쌍꺼풀 수술 경력, 홍금보나 원표 등과 칠소복 단원 출신'이라고 흔히 정리해 왔던 성룡의 과거가 지난한 가족사를 배경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다큐멘터리였다. 성룡은 최근 들어서야 자신의 가족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됐다. 그의 아버지가 죽기 전에 아들에게 집안의 전통을 알려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용의 흔적>에서 성룡은 아버지가 장개석의 스파이였다는 것과 함께 배다른 형 두 명이 중국 본토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역시 배다른 누나 둘을 키우고 있던 성룡의 어머니가 어떻게 홍콩으로 건너와 지금의 아버지를 만나 성룡을 낳게 됐나를 담담하게 보여 준다. 성룡의 부모는 마치 <첨밀밀>의 소군(여명)과 이요(장만옥)처럼 홍콩에 정착해 살았던 것이다. 전쟁의 상흔과 문화혁명의 여파 속에 수 세대에 걸쳐 펼쳐지는 이야기가 우리의 근현대사와 그리 멀지 않다. <용의 흔적>을 보면서 벅차 오르는 마음은 결국 같은 아시아인이라는 정체성에서 오는 동질감과 그리 멀지 않다. 성룡의 최근 필모그래피와 별개로 그를 향한 ‘동정적 비감’은 <뉴 폴리스 스토리>에서 극대화된다.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성룡이 자신의 부하 대원들을 모두 잃고 폭발로 인한 하얀 재를 온통 머리에 뒤집어쓴 채 힘없이 앉아 있는 모습이다. 성룡은 자신의 전기영화인 <성룡: 마이 스토리>(1997)에서 어렸을 적 경극학원에서 각종 기예를 익히던 시절을 회상한 적이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 훈련, 또 훈련이었다. 어린 내가 그걸 감당하기란 무척 힘든 일이었다. 경극을 하기 위해 거울을 보며 혼자 화장을 했고 훈련이 다 끝나면 혼자서 쓸쓸히 화장을 지웠다. 매일 밤 온통 하얗게 칠해진 내 얼굴을 보고 있으면 너무 힘들고 서러워 계속 눈물이 났다.” 비록 상황은 다르지만 그 장면에서 받았던 인상은 성룡이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토로하던 오랜 회상과 다르지 않다. 그 얼굴 하나만으로도 성룡이 지난 30여 년간 온몸으로 구르고 날면서 쌓아온 자기만의 경력들, 유색 인종이라는 핸디캡을 안고 수시로 할리우드의 문을 두드리며 가다 서다를 반복했던 나날들, 안으로는 후배를 챙기고 밖으로는 세계를 돌며 영화를 홍보해온 스마일맨 ‘따거’ 성룡의 현실이 오버랩됐던 것이다. 그렇게 <뉴 폴리스 스토리>는 성룡의 최근작들 중 가장 자전적인 영화로 다가왔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경찰 “나는 지난 20년 동안 계속 할리우드 진출을 시도했다. 당시 미국 시장은 열악했고 그들의 태도는 '능력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가라'였다. 무엇보다 충격이었던 것은 같은 동양인인 이소룡의 액션 스타일이 통했던 상황에서, 그의 <용쟁호투>를 감독한 로버트 클라우스와 함께 <배틀 크리크>(1980)를 찍었는데도 실패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물어보았다. 그들은 내 킥과 주먹에 힘이 없다고 했다. 그때부터 많은 할리우드 영화들을 찾아보았다. 존 웨인만 해도 거구에서 큰 힘으로 단 한방에 상대를 제압했다. 그들에게 인기 있는 대부분의 액션영화들이 그런 식이었다. 하지만 나는 나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나에게는 이소룡에게 없는 유머가 있었고, 그가 모르던 버스터 키튼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프로젝트 A>와 <폴리스 스토리>였다.” 나오기만 하면 포복절도할 것 같은데도, 주성치는 의외로 남의 영화에 카메오 출연을 한 적이 별로 없다. 그랬던 그가 성룡과는 사이좋게 한 번씩 서로 카메오 출연을 해준 적이 있다. 성룡이 <희극지왕>(1999)에 베테랑 엑스트라 배우로 잠깐 모습을 비추고, 주성치는 <성룡의 빅타임>(1999)에 웃기는 교통경 찰로 카메오 출연한 것이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그에 대해 <중경삼림>(1994)에 경찰로 출연한 양조위에 대한 패러디가 아니냐고 물었고, 주성치는 말도 안 된다며 이수현이나 성룡을 흉내낸 것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홍콩영화에서 ‘경찰’ 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이수현과 성룡밖에 없어.” <첩혈쌍웅>(1989)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공복>(1984) 시리즈와 더불어 주성치와 함께 경찰로 출연한 <벽력선봉>(1988) 등 이수현은 대표적인 경찰 전문 배우였다. 하지만 성룡 역시 그에 뒤지지 않는다. 찬찬히 살펴보면 성룡의 현대 영화는 기본적으로 ‘경찰 영화’다. 그 시초라 할 수 있는 <프로젝트A>(1983)에서도 그는 육경과 대립하는 해경으로 나왔고 <폴리스 스토리>(1985) 시리즈는 말할 것도 없다. <복성고조>(1985)나 <용적심>(1985), <중안조>(1993)에서도 경찰이었고 할리우드에서 만든 <러시 아워>(1998) 시리즈에서도 경찰이며, <샹하이 눈>(2000)에서도 미국으로 파견된 청나라 경찰이나 다름없다. 정의 구현과 약자 보호, 보편적 가치의 설파를 최우선 덕목으로 내세우는 ‘보수파’ 성룡에게 경찰은 더없이 좋은 직업이었다. 하지만 경찰의 길은 언제나 순탄하지 못했다. <용적심>에서 여자친구 제니(주보의)는 “부모님이 경찰하고만 사귀지 않으면 된다고 했어”라고 말하고,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에서 아메이(장만옥)의 이모도 “경찰만 아니면 좋을 텐데”라고 읊조린다. <뉴 폴리스 스토리>의 여자 친구 가이(양채니) 역시 성룡과 함께 작전에 투입됐던 남동생을 잃고 만다. 그래서였을까? <뉴 폴리스 스토리>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 중 하나는 바로 여자 친구 양채니의 상처 입은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에서 장만옥은 늘 성룡의 여자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악전고투했다. 무너져 내리는 공중전화 박스에서 전화를 하고,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철근 구조물 사이를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그렇게 매번 위험천만한 스턴트 장면 두어 신 정도는 직접 해야 했고, 경찰 남자 친구인 성룡으로 인해 납치당하거나 부상당하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뉴 폴리스 스토리>에서 성룡이 경찰로서 살아왔던 힘든 날을 드러내주는, 자신의 커리어가 과연 어떤 희생 속에서 이루어져 왔는지를 보여 주는 단 하나의 컷이 바로 거기에 있다. 양채니의 상처가 과거 성룡으로 인해 입었을 상처인 것은 지극히 당연한 추론이다. 그 장면을 통해 성룡은 자신의 여자 친구를 향해 최선의 예의를 갖춘다.
홍콩영화 근대화 프로젝트 “당시 영화 제작에 대한 홍콩 당국의 지원은 열악했다. 가령 <폴리스 스토리 2>의 한장면을 보자. 내가 이층 버스에 올라타 간판을 몇 개 피하고 뛰어넘다가 창을 뚫고 들어가는 장면이 있다. 거리 통제에 대한 경찰의 태도는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없었다. 그래서 나는 카메라의 위치만 정해두고 그냥 무작정 찍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때 영화 속의 적을 쫓고 있는 한편으로, 현실 속의 경찰들에게 쫓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성룡이 과거 만큼의 액션을 선보이지 못하는 것은 슬프지만 자명한 사실이다. <뉴 폴리스 스토리>는 성룡 영화의 대형화 경향과 새로운 변화 의지 모두를 보여 준다. <쾌찬차>(1984)와 <용형호제>(1986)를 필두로 성룡 영화의 해외 로케이션과 대형화 경향은 이미 시작됐다. 말레이시아에서 촬영한 <폴리스 스토리 3>(1992) 이후의 시도들이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면, <뉴 폴리스 스토리>에 다시 등장한 홍콩의 이층 버스는 반갑고 바다를 향해 쏟아져 내리는 수천 개의 오리 인형 또한 반갑다. 성룡이 예전처럼 버스의 일층과 이층을 자유자재로 오가지 않고 창문으로 나왔다 들어갔다 반복하지 않지만 충분히 즐겁다. ‘대규모 물량 액션’들 가운데서도 유난히 ‘대량으로 쏟아져 내리는’ 장면들을 선호해온 그답게, 홍콩 도심 한복판을 질주하다 항구에서 끝맺는 액션신이 오우삼의 비둘기마냥 반갑다. 클로즈업 액션 신이 없어도 쇼핑몰 한가운데를 향해 달려오는 이층 버스의 롱숏만으로도 충분히 감탄스럽다. 바로 ‘성룡식 블록버스터’는 1990년대 초반 한국 영화계가 그토록 갈망하던 '한국식 블록버스터'의 1차 모델이었다. 물량도 물량이지만 기본적으로 성룡 영화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육체의 영화’라는 점이다. 성룡과 주성치의 차이점이 거기에 있다. 성룡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광동어를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 홍콩 무협영화의 전통에 기반한 격투 액션과 버스터 키튼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환경 융화적 액션’ 모두 그는 최고 자리를 선점하고 있었다. 고단해 보이지만 <뉴 폴리스 스토리>에서도 그는 모처럼 후배 배우와 힘든 일대일 액션에 나선다. 한 발자국 도약하며 발을 내지르고, 왼손과 오른손으로 양 상단을 탁탁 막아낸 다음, 다시 오른발로 중단과 상단을 한번씩 가격하는 성가반(성룡이 이끄는 무술팀)식 경제적 격투술을 다시 목격하는 것은 애틋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역시 예전처럼 여러 대의 자동차를 우그러트리고 놀이터의 각종 놀이기구들을 오가며 벌이는 활력은 없지만, 성룡은 정말 있는 힘을 다한다. 그리고 떨어져 나간 레고 장난감의 머리를 붙이는 센스도 잊지 않는다. 성룡 영화의 물량과 액션이 올드팬들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면, 캐스팅의 묘미 또한 놓칠 수 없다. 알려졌다시피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는 홍콩 영화계의 중요한 인력 양성소였다. 먼저 두 명의 한국인이 포함된 성가반 단원들은 여전히 세계 최강의 무술팀 중 하나로 맹활약하고 있다. 지금은 세계적 히로인이 된 장만옥은 말할 것도 없고, 어느덧 홍콩영화계의 중견배우가 된 유청운도 <폴리스 스토리2>(1988)로 풋풋한 얼굴을 드러냈다. 홍콩 쇼브라더스의 원로 초원 감독은 <폴리스 스토리>의 마약단 보스로 무던히도 고생했고, 과거 <외팔이> 시리즈에서 왕우의 부인역을 맡았던 초교도 장만옥의 이모로 출연해 골머리를 썩였다. <뉴 폴리스 스토리>에서는 왕년의 무협 스타 우영광과 과거 발라드의 제왕이었던 가수 겸 배우 왕걸이 그의 동료로 등장한다. 또한 성룡의 후배 정소봉(사정봉)이 과거를 회상할 때 도둑질을 하다 차에 치어 죽음을 맞는 아버지는 바로 오백이다. 사정봉과 오백은 서극의 <순류역류>(2000)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절친한 친구 사이다. 성룡은 <뉴 폴리스 스토리>를 ‘우정의 무대’처럼 완성했다. 이렇듯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는 홍콩 영화계의 과거와 현재가 만나 대화하고 충돌하는 장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성룡 도시 영화의 시작이자, 그가 주창한 홍콩영화 근대화 프로젝트의 시초였다.
성룡의 칠전팔기 “<러시 아워>를 찍기 전의 크리스 터커나 <샹하이 눈>을 찍기 전의 오웬 윌슨은 그다지 유명한 스타급 배우가 아니었다. 그 작품을 통해 메인 스트림에 등장했다고도 할 수 있다. <러시 아워>도 사실은 크리스 터커가 아니라 에디 머피와 하려고 했다. 그런데 에디 머피는 이미 최고 스타였기 때문에 포스터에 '에디 머피와 재키 챈 주연'이라고 표기될 텐데, 나에게는 그것이 '재키 챈과 크리스 터커 주연'이라고 표기되는 것과 다른 의미였다. 오래전 <캐논 볼> 같은 영화로 할리우드 진출을 노릴 때 나는 아시아에서 동남아시아까지 아우르는 최고 스타였지만, 정작 <캐논 볼> 포스터에서 내 이름 같은 건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 이름을 그들의 이름보다 앞에 표기하고 싶었다. 내가 홍콩영화에 나오든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든 마찬가지다. 그것은 나의 오기 이전에 아시아인으로서의 자존심 같은 거였다.” 홍콩 영화계의 무협 전통이나 다른 액션 배우들과 성룡이 다른 것이 있다면 바로 하강하는 영웅의 이미지를 들 수 있다. <폴리스 스토리>에서 악당의 버스를 쫓아 산등성이를 질주 하강하는 모습, 백화점 샹들리에를 타고 내려오는 모습은 길이 남을 명장면이다. <폴리스 스토리2>에서 보여 준 계단식 폐공장의 구조는 마치 과거 장철 영화의 상승과 하강 구조를 연상시키는 절묘한 세트였다. 자타가 공인하는 성룡 마니아 류승완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주변 환경은 언제나 성룡의 상승을 어렵게 한다. 왕우의 영화만 하더라도 붕 떠서 어깨를 탁 짚고 간다거나 하고, 호금전 영화의 인물들은 거의 중력의 지배를 받지 않는 움직임이다. 그런데 <폴리스 스토리>에서 성룡은 가방을 찾기 위해 거의 사망탑 같은 구조를 1층부터 힘겹게 올라간다. 어떻게 보면 성룡 영화 전체가 사망탑을 오르고 내려오는 과정이다. 올라가는 건 우아한 느낌을 주지만 떨어지는 건 서스펜스를 주는 것 같다. 하강의 이미지가 드라마의 상승 효과를 주기도 하는 거다. 시각적 하강은 심리적 상승을 가져오는 것 같다. 그게 바로 성룡 영화의 매력이다.” <뉴 폴리스 스토리>에서 성룡은 더 나아가 당국의 아낌없는 협조를 얻어 홍콩 컨벤션센터의 지붕으로 향한다. 홍콩 영화인들에게는 촬영을 허가하지 않던 83층짜리 IFC빌딩(제2국제금융센터)을 <툼레이더2: 판도라의 상자> 제작진에게 허락해 물의를 빚었던 관계 당국이, 역시(!) 성룡에게만은 그 높고 웅장한 홍콩 컨벤션센터의 지붕을 허락했다. 여기서 영화를 어설픈 액션으로 마무리하지 않고 규모 그 자체를 서스펜스로 치환하는 성룡 특유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뉴 폴리스 스토리>는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하강하는 영웅, 맞고 또 맞으면서도 끝내 승리하고야 마는 성룡의 이미지를 집약한다. 아마도 최근 성룡 영화에서 느꼈던 실망감은 육체의 노쇠와 더불어 끝없이 상승하고자 하는 욕구 때문은 아니었을까?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초능력으로 상승과 비약을 반복하는 <턱시도>(2002)나 <메달리온>(2003)의 성룡은 아무래도 위화감을 불러일으킨다. <뉴 폴리스 스토리>에서처럼 술기운에 비틀거리며 토악질을 하고, 가슴 아픈 사랑에 눈물 좀 흘리면 어떠랴. 성룡은 언제나 우리에게 웃는 얼굴의 마조히스트로 사랑받아왔다. 비틀거리고 쓰러지고 맞고 또 맞으면서도 결국 인내 끝에 승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성룡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삶의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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